[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⑯-정세훈] "옥소리 주홍글씨, 이젠 벗고 싶다"

2018. 12. 9. 06:00이슈

언론과 인터뷰를 왜 피하겠어요? 정세훈은 언론의 관심은 현재 내 모습 보다는 과거 스캔들에 자꾸만 초점을 맞추려고 해서 간극이 생겼다고 입장을 밝혔다. /임영무 기자
언론과 인터뷰를 왜 피하겠어요? 정세훈은 언론의 관심은 현재 내 모습 보다는 과거 스캔들에 자꾸만 초점을 맞추려고 해서 간극이 생겼다고 입장을 밝혔다. /임영무 기자
"언론과 인터뷰를 왜 피하겠어요?" 정세훈은 "언론의 관심은 현재 내 모습 보다는 과거 스캔들에 자꾸만 초점을 맞추려고 해서 간극이 생겼다"고 입장을 밝혔다. /임영무 기자

[더팩트|강일홍 기자] 팝페라 가수 정세훈은 오페라 아리아부터 뮤지컬,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장르를 아우르며 '한국의 파리넬리'로 불린다. 단지 '환상적'이라는 표현을 넘어 '소름이 돋는다'는 수식이 적합한 카스트라토(여성과 남성의 음역대를 완벽히 표현하는 가수)다.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천상의 목소리'로 찬사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시련이 닥친 건 다름아닌 배우 옥소리와의 염문이었다. 그는 지난 2008년 방송인 박철과 부부였던 옥소리와의 부적절한 만남이 불거진 뒤 무대를 떠났다.

꼭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정세훈은 클래식 가수들에게 꿈의 무대로 여기는 뉴욕 카네기홀 단독 콘서트를 내년에 준비하고 있다. 중국 상해 사범대 객좌교수(초빙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외국인이 국립대 초빙교수 자리에 오르는 일은 정세훈이 유일하다.

그의 행보가 궁금해 인터뷰 요청을 했다. 옥소리 사건 등 다소 껄끄러운 질문이 예상되는 데도 그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며 기꺼이 응했다. 정세훈의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스튜디오 '플라이투더문'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세상을 등지고 싶었을 만큼 심적 고통이 컸다." 정세훈은 10년 전 배우 옥소리와의 사건에 대해 "과거는 그저 과거일 뿐, 이제는 '주홍글씨'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스튜디오 '플라이투더문'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임영무 기자

-그동안 근황이 궁금하다. 음악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이전에 비하면 대중적 노출이 뜸했다.

사실 음악인으로서는 꽤 바빴어요.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마도 과거처럼 제가 TV 등에 출연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겠죠. 요즘 저는 연중 절반가량은 해외에서 공연을 해요. 며칠전 말레이시아 공연을 끝냈고, 다음주엔 일본 후쿠오카 공연이 있어요. 연초에도 해외에 일정이 줄줄이 잡혀있어요. 최근 방영된 드라마 OST에도 참여했고요.

정세훈은 국내보다는 국외 팬들이 더 실력을 인정하고 열광하는 카스트라토 팝페라 가수다. 대중성을 강조한 그의 1집 '컴포트'(2004)와 순수 클래식 컨셉트인 2집 '네오클래식'(2006)은 지금도 꾸준히 음반이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특히 네오클래식은 일본에서 오페라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처음 인터뷰 요청을 한 뒤 만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음악적 활동은 활발하게 하는 편인데 언론을 피할 이유가 있나?

일부러 기피하는 건 아니고요. 저야말로 음악인으로서 언론의 관심이 절실해요. 다만 언론의 관심은 현재 제 모습 보다는 과거 스캔들에 자꾸만 초점을 맞추려고 해서 간극이 생긴 거죠. 그 사건(옥소리)이 있고 난 이후 10년동안 정식 언론 인터뷰는 딱 두번(한겨레 중앙일보) 했고, 음악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한 이후로는 강 기자님이 유일해요.

"나이는 표기하지 말아달라." 정세훈은 "카스트라토 가수로서 나이에 대한 선입견 없이 순수하게 목소리로 평가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임영무 기자

-나이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굳이 나이를 표기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어떤 이유가 있는지 물어봐도 되나?

저는 팝페라 가수로 데뷔한 이후 한번도 나이와 학연 지연을 오픈하지 않았어요. 지금껏 어떤 인터뷰에서도 밝히지 않았고 그래서 인터넷 프로필에도 없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저는 카스트라토 가수로서 나이에 대한 선입견 없이 항상 순수하게 목소리로 평가되기를 희망해요. 나이나 그 밖의 출신배경 등과 비교돼 조금이라도 음악의 느낌이 훼손되는 걸 원치 않아요.

정세훈은 2000년 뮤지컬 '오페라유령'에 출연하며 데뷔했다. 당시 갓 신인으로 라울 역인 뮤지컬스타 유정한의 언더더블로 캐스팅돼 발을 들여놓았다. 2001년 워커힐 유니세프 자선행사를 계기로 서울음반과 계약, '내이름은 공주' '여인천하' 등의 드라마 OST에 참여했다. 이후 영화 드라마 CF 등에서 신비한 목소리로 주가를 올리며 2004년 정식 음반(1집)을 냈다. 최근엔 주상욱 이민정이 운명적 인연의 시작을 알리며 주말 안방극장에 강렬한 눈도장을 찍은 SBS 드라마 '운명과 분노' OST에 참여했다.

-남자가 내는 여성 음색으로 팝페라 열풍을 일으켰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카스트라토로 활동중이다.

20년 전만 해도 카운터테너(여자 음역인 콘트랄토나 메조 소프라노 음역을 노래하는 남자 성악가)나 카스트라토라는 단어조차도 생소했어요. 그나마 영화 '파리넬리'를 통해 '남자도 저런 목소리를 내는구나' 하는 정도였죠. 대학시절 합창 클래스 시간에 여성 단원들 목소리가 고음에서 못 나오면 제가 그냥 장난삼아서 해봤는데 여자보다 더 높이 올라가곤 했죠. 캐나다 토론토 유학중 뒤늦게 제 목소리의 가치를 확인했고요.

당시까지만 해도 정세훈의 목소리에 대해 국내에서는 '신기하다'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가 유럽이나 미국 등 해외에서 노래하면서부터 비로소 기존 카운터테너를 뛰어넘는 동양인의 '경이로운 목소리'에 반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세훈은 클래식 가수들에게 꿈의 무대로 여기는 뉴욕 카네기홀 단독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말레이시야 공연(아래 사진)을 마치고 귀국했다. 사진 위는 예술의전당 공연 장면. /네오클래식 제공

-카스트라토나 카운터테너 같은 용어가 일반인들한테는 좀 낯설다. 음악을 전공하고 노력하면 비슷한 목소리를 낼 수 있나?

카스트라토는 그냥 노력만으로 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선천적으로 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성대를 갖고 태어나야한다고 믿어요. 그 점에서 보면 저는 축복인 셈이죠. 저 같은 경우는 가성이 아니라 진성에 의해 나오는 목소리거든요. 저는 여성 알토의 음역에 해당하는 부드러운 테너의 음성을 지닌 카운터테너이면서 여성의 목소리까지 내기 때문에 '팝페라 카스트라토'라는 명칭을 쓰는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정세훈은 카운터 테너로 분류되는 게 맞지만 유일한 카스트라토로 인정받고 있다. 1922년 사망한 아레산드로 모레시(Alessandrro Moreschi)가 마지막 카스트라토였다. 카스트라토(Castrato)는 변성기를 겪지 않은 남성이 소프라노 파트를 담당한 경우인데 그래서 원뜻은 '거세한 남성가수'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내년에 미국 뉴욕에 있는 카네기홀에서 단독콘서트를 한다고 들었다. 클래식 가수들한테는 꿈의 무대로 알려진 곳 아닌가?

네, 카네기홀 단독무대가 내년 가을께 예정돼 있어요. 날짜만 픽스되지 않았을 뿐 공연관련 일정은 모두 조율이 끝났어요. 팝페라 크로스오버 형식으로는 처음이라고 해요. 클래식 분야에선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영광이죠. 그동안 해외에서 수없이 많은 공연을 하면서도 이런 기회가 오리라곤 생각을 못했으니까요.

팝페라는 말 그대로 팝과 오페라를 합성한 장르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다 만족시켜야 '진정한 팝페라', '크로스오버'의 경지를 인정받는다. 단지 가요에 클래식 목소리만 얹는다고 팝페라가 아니란 얘기다. 정세훈은 2005년 카루소 재단으로부터 '세계를 위한 천사의 목소리 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프랑스 마들렌 성당에서 아시아 아티스트 최초로 초청돼 단독 콘서트를 성공리에 마쳤다.

"더이상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의 잣대로 평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세훈은 노래를 통해 자신보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임영무 기자

-중국 상해사범대 음악대학 객좌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이라고 들었다.

중국에는 경극이라는 전통공연이 있어요. 제가 경극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는 소문이 나서 중국 북경과 상해 대학 두 군데서 연락이 왔어요. 지난해부터 4학기째 적을 두고 있어요. 일종의 명예교수(초빙)인 셈인데 중국 국립대음대에서 외국인 최초라고 하더라고요. 한중 문화교류에 교감하고 직접 강의도 하는 상징적으로나마 한국대표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경극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 중 하나다. 새소리처럼 내는 경극 배우들의 고음은 러시아 출신 가수가 중국에서 비슷한 음색으로 성공한 바 있다. 다만 이 가수는 노래 보다는 괴성에 가깝다는 평가가 내려진데다 크로스오버(진성 카스트라토)는 정세훈이 유일하다. 중국은 시대적 변화에 맞춰 경극의 현대화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그를 대안으로 꼽았다.

-해외에서의 이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게 안타깝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제 스스로 지고가야할 숙명같은 거죠.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과거'의 굴레와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선입견과 편견의 무서움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는 부분이고요. 주변에서 '불후의 명곡'이나 '복면가왕' 같은 프로그램을 추천해줘도 제가 알아서 미리 포기해요. 여러차례 출연 약속이 잡혔다가도 막판에 취소되는 경험이 있거든요.

정세훈은 '옥소리 사건' 이후 대중음악인으로서 힘든 과정을 반복했다. 지난 10년간 몇차례 요청받은 TV 출연이 '보이지 않는 걸림돌'로 인해 무산됐다. 나중에는 그가 먼저 거절했다. 한데 방송사 쪽에서 "이젠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느냐, 일단 한번만 출연하고나면 그동안의 벽이 모두 사라진다"며 설득했다. 그가 힘들게 출연을 결심했지만, 이 프로그램 역시 불과 5분전에 취소돼 되돌아간 아픔을 갖고 있다.

"신앙의 힘으로 고난의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다." 정세훈은 한때 보라카이의 한적한 바닷가에 카페를 내고 조용히 혼자 살고 싶은 충동에 젖기도 했다. /네오클래식 제공

-10년전 사건을 다시 떠올리긴 힘들 것으로 안다. 그 때 일은 다 털어냈는지 궁금하다. 세상을 아예 등지고 싶었을 만큼 심적 고통이 컸어요. 저 못지않게 부모님들이 힘드셨죠. 특히 무용을 하신 어머님이 같은 입장에서 많은 용기를 북돋워줬어요. 가장 많이 싸우고 가장 많이 상처를 준 분이었는데, 정작 힘들고 어려울 땐 가장 큰 위로가 돼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시죠. 아직도 다 털어낸 건 아니지만, 나름 행복한 음악생활로 지금은 맘이 편합니다.

정세훈은 한동안 무대에서 완벽히 사라졌다. 연예인 부부였던 박철-옥소리 부부의 파경 과정에서 그가 옥씨와 한때 사귀었다는 사실을 털어놨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2008년 12월 열린 간통죄 재판에서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으로부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3대째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그는 "무엇보다 신앙의 힘으로 고난의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자주 대중 앞에 나서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결국 배우 옥소리와의 과거사 때문이라고 보는가.

과거 일을 다시 리마인드하는게 편치는 않아요. 그렇다고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어요. 무슨 일이든 자연스럽게 흘러가야한다고 생각해요. 불과 3개월간 특별한 사이였지만 책임을 회피하거나 숨은 적이 없고, 그 일로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옥소리 씨나 박철 씨 둘다 각자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과거는 그저 과거일 뿐이잖아요. 그래야 저도 '주홍글씨'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그의 '일탈'은 상대가 유명 배우여서 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했다. 여론재판과 법적 단죄를 받은 뒤 그는 "분명 사랑이었지만 해선 안 될 사랑이었다. 모든 잘못은 내가 감당하겠다"며 자신을 둘러싼 의혹의 시선에 정면 대응했다. 정세훈은 끝까지 상남자였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주변에서 말렸지만 그는 "불륜이라는 원죄까지 부인하고 싶지 않다"며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다.

알고보니 의리와 정 많은 사나이. 정세훈은 "더이상 과거사에 매몰돼 숨지 않겠다"면서 "제 노래를 통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임영무 기자

-연예계 인맥은 탄탄한 편이라고 들었다. 주로 어떤 연예인들과 어울리는지 궁금하다.

연예계 남자들끼리만 어울리는 골프 모임이 있는데 스케줄이 없을 땐 가끔 라운드 하며 친목을 다지곤 해요. 제가 숨고 싶을 때마다 이런 멋진 선후배들과 만나 소통하면서 많은 위로가 됐죠. 거꾸로 류시원 씨는 제 음악을 좋아해서 10년 전부터 제 노래를 들으며 위로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저한테는 다들 고마운 분들이죠.

연예계는 한 번 주홍글씨가 씌워지면 속성상 서로 드러내놓고 친한 내색을 못하는 한계가 있음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불필요하게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염려에서다. 그 자신 우울증 치료를 받을만큼 힘들게 지낸 만큼 멤버들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기를 피했다.

-지난 과거사를 떨쳐내고 다시 일어서는데 10년이 걸렸다. 그래도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있을 것같은데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각오나 대중에 바라는게 있다면?

정점의 자리에 올랐을 때 한순간 무너져내리는 아픔과 상실감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죠.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편안해졌어요. 여전히 저보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해드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제 음악으로 그분들에게 힐링을 드리고 싶어요. 물론 저 역시 같이 위로를 받는거죠. 다만 더이상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의 잣대로 평가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세훈은 국내외 클래식 음악인들을 통틀어 비교적 몸값이 높은 편이다. 더구나 해외에서 자신을 더 인정하는 만큼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그만의 확고한 기준이 있고, 아무리 개런티를 많이 줘도 격에 맞지 않으면 서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렇다고 큰 무대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한편으로는 의리와 정(情)이 많은 사나이기도 하다. 필자와 인터뷰를 마친 직후 그는 인사동의 한 화랑에서 노래를 불렀다. 관객은 불과 40~50명이었지만, 그는 혼신의 열정을 담아 열창했다. 알고보니 이날 개인전을 갖는 지인을 위한 노개런티 축하무대였다.

한때 보라카이의 한적한 바닷가에 카페를 내고 조용히 혼자 살고 싶은 충동에 젖기도 했다. 그만큼 현실의 시련과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온 뒤에 땅이 더 단단히 굳듯이 그는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대중 앞에 다가서고 있다. 스페셜인터뷰의 주인공다운 포스와 차분함이 이채롭게 느껴졌다.

eel@tf.co.kr

원문 출처 [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⑯-정세훈] "옥소리 주홍글씨, 이젠 벗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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