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20. 08:00ㆍ이슈
특별검사팀 이규철 특검보가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임세준 기자
[더팩트ㅣ명재곤 기자] 브라질 사법당국의 기업 부정부패수사 '라바 자투(Lava Jato,세차용 고압분사기)작전'은 지난 2014년3월 개시됐습니다. 뇌물을 주고받는게 관행처럼 돼 버린 사회 부조리를 '고압 분사기'로 한 방에 씻어내겠다는 '부패와의 전쟁'으로 보면 됩니다.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의 각종 비리가 주 타깃이었고 지금은 주요 도시의 공항·지하철 등 공공건설 사업 비리등으로 넓혀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3년동안 120명이 유죄판결을 받았고 이들에게 무려 총 1200년의 징역형이 선고됐다고 현지 언론은 전하고 있습니다. 브라질내 여론은 라바 자투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답니다. 대형 기업에 대한 부패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져도 부패수사는 계속돼야 한다'는 찬성의견이 91%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제도화된 부패를 없애기 위한 처방으로 엄격한 사법의 작동을 중요시한다고 합니다. "드러나고 입증된 범죄는 정당한 절차에 따라 반드시 처벌한다"는 라바 자투 작전팀의 신념에 브라질 국민들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작전은 올해 다보스포럼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세계경제포럼(WEF)연차총회(다보스포럼)에 참석한 브라질 호드리구 자노 연방검찰 총장은 "부정부패수사는 투자자들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법적 안정성을 높여 더 많은 투자를 끌어들이는 효과를 낸다"고 강조했습니다. 부정부패수사가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기업인 대상 세미나에서 주장해 눈길을 모았습니다.
브라질 국민은 기업 부정부패 수사를 지지하고, 당국은 그 수사가 경제를 살리는 데에 보탬이 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19일 새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영장 기각후 서울 구치소에서 나와 취재진 질문에 입을 다문 체 승용차에 타고 있다. /임세준 기자
"뭘 안 주면 안 줬다고 패고, 주면 줬다고 패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중간에서 어떻게 할 수 없어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이 18일 고용노동부장관 초청 30대그룹 최고경영자 간담회에서 작심하고(?) 한 말입니다.
이 날은 국내 최대그룹 삼성의 오너 경영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구속영장이 청구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는 시기인지라 김 부회장의 한마디는 재계 안팎에서 잔잔한 파장이 일었습니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직접 뇌물죄와 제3자 뇌물 제공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도와달라는 청탁건으로 대가성이 있는 뇌물 430억원을 제공했다는 게 혐의 요지입니다. 그러나 이 부회장과 삼성측은 "대통령의 강요에 의해 어쩔수없이 최순실 일가를 지원하고 미르·K스포츠재단에도 출연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재계는 내심 김 부회장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들 입니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청구 및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던 기간중 필자가 만난 재계 몇몇 임원급 인사들 반응은 한결 같았습니다. "도주우려가 없고, 특검측 주장대로라면 뇌물죄 공여 증거가 차고 넘치기에 증거 인멸 소지도 없고, 무엇보다도 대통령의 요구에 등을 돌릴 기업인이 한국에 어디 있겠느냐"며 모두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을 점쳤습니다.
'가재는 게편'이라 그들이 그런 논리를 펼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영장전담판사의 기각사유를 볼때도 재계측 상식적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구속영장 기각은 유무죄 다툼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특검과 삼성간 뇌물죄 여부를 소명하는 창과 방패의 대결은 승패를 가늠하기가 힘듭니다. 여론과 법의 잣대가 항상 동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그룹 삼성의 수장 이재용 부회장의 운명이 이 한 판에 달렸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가운데 삼성측은 한 고비를 넘겼을 뿐 아직 수사는 진행 중이라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임세준 기자
구속영장 기각후 19일 새벽, 구치소에서 나오는 이 부회장의 얼굴에 한 순간 살짝 옅은 미소가 맴도는게 보였습니다. 자기방어차원에서 불구속 재판(기소)은 이 부회장 개인에겐 여러모로 유리할 것입니다. 또 경영 현장에서 현안을 하나라도 더 챙길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게 기업인 입장에서는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미소를 자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부회장은 미소를 거두고 자신을 향한 각종 여론을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정농단 비상시국에서도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이 시류에 편승해 무조건 법원을 비난해선 안된다." 구속영장 기각을 두고 극과 극의 주장들이 정치권, 시민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실을, 왜 그런 지를 직시해야할 것입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올해 우리 경제인들의 다보스포럼 참여 열기가 예년보다 못합니다. 올해 포럼 주제는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입니다.
sunmoon41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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