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21. 16:00ㆍ이슈
[더팩트|강일홍 기자] 영화 '골든슬럼버'는 평범한 택배기사가 오래된 친구의 전화를 받게 된 후, 유력 대선후보의 암살범으로 몰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이야기다. 강동원 한효주를 투톱으로 내세운 이 작품은 지난해 흥행한 영화 '범죄의 도시'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펼친 윤계상이 가세하면서 개봉 전부터 관객들의 주목을 끌었다. 연휴라는 전통적인 '극장가 흥행 특수'를 겨냥한 작품인 만큼 기대도 컸다.
'골든 슬럼버'는 일단 시작부터 현실과는 거리가 먼 스토리로 전개된다. 사전 지식이나 정보가 없는 관객들의 경우라면 언뜻 '도대체 무슨 뜻이지'라는 의문부터 품을만큼 영화 제목부터 낯설지만, 원작에 등장하는 비틀즈의 노래 'Golden Slumbers'(황금빛 졸음)가 모티브다. 이 영화는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이미 2010년에 일본에서 먼저 제작돼 상영된 바 있고, 한국판 '골든슬럼버'에서도 그대로 차용했다.
줄거리나 설정도 총리가 대선후보로 바뀐 것 외엔 일본영화와 판박이로 흡사하게 닮았다. 특정 집단이 자신들이 원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국가 기관의 힘을 동원하고, 누명을 씌울 희생자를 선정해 오랜 기간 음모를 꾸민다는 설정은 황당하지만 매우 기발하다.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디어와 권력이 만들어내는 조작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게 된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폭발과 유력 대선 후보 암살 사건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구성에 개연성이 없어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골든슬럼버' 스틸◆ 탄탄한 원작이라도 한국적 정서에 맞게 각색해야 '관객 공감대'
일본 만화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국내에서도 흥행을 보증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돼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그만큼 원작의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골든슬럼버' 역시 이런 이유로 더 기대와 관심을 불러모은 게 사실이다. 한데 특별한 경쟁작도 없었던 설연휴 기간 '골든슬럼버'의 관객반응은 시들했다. 왜 그랬을까. '골든슬럼버'는 정서적으로 영화가 한국 관객의 입맛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한순간에 도망자가 된 주인공이 무엇 때문에 누명을 썼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유명 아이돌 가수를 치한으로부터 구하면서 모범시민으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 어느날 '학창 시절 밴드 멤버'의 연락을 받고 하루아침에 암살범으로 전락해 도망자 신세가 된다는 황당한 설정은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에 대한 설명이 없고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보따리만 풀어놓고 뒷수습을 아예 포기한 꼴이다.
아무리 탄탄한 원작이라도 작품의 성패는 효과적으로 각색하느냐에 달려있다. 주인공의 옷에 억지로 꿰맞춘 듯한 느낌이라면 아무래도 어색하다.주인공은 CCTV, 지문, 목격자까지 완벽히 조작된 상황에서 '전직 요원'(김의성)의 도움을 받는다. 관객들은 특별한 정의감을 가진 인물도 아닌 그가 죽어가면서까지 구한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다. 음모의 열쇠를 쥔 인물이라면 필시 그 의문의 매듭을 풀어냈어야 옳다.
'골든슬럼버'는 줄거리나 설정도 총리가 대선후보로 바뀐 것 외엔 일본영화와 판박이로 흡사하게 닮았다. 일본판 '골든슬럼버'는 2010년 개봉됐다. /일본영화 '골든슬럼버' 스틸◆ 배우가 작품과 궁합이 안맞는다면 스타성에 치중한 '미스 캐스팅'
영화든 소설이든 스토리 전개에 개연성은 필수다.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생뚱맞은 얘기라면 공감대를 만들어낼 수 없다. 때리고 부수는 통쾌한 액션장르라도 등장인물들 간의 개연성이 없다면 재미는 반감되게 마련이다. 스마트폰 시대의 상징은 뉴스의 즉시성이고, 광화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폭발은 대중적 관심사다. 유력 대선 후보 암살 사건에 누구도 긴박감을 느낄 수 없다면 몰입이 될 리가 없다.
관객들이 갖는 이 영화에 대한 또 하나의 기대와 믿음은 다름아닌 배우다. 기본적으로 탄탄한 기획과 시나리오가 뒷받침돼야 좋은 작품이 나오게 돼있지만, 각본과 연출이 좀 아쉬워도 배우의 연기력으로 커버되는 사례는 많다. 반면 이번 설연휴 '믿보강'(믿고 보는 배우 강동원)에 발등 찍혔다는 관객은 많다. 극장을 찾은 일부 관객들 중엔 '강동원표 연기에 왕짜증이 난다'는 푸념을 관람후기로 올리기도 했다.
SNS를 통해 한순간 영웅이 되거나 추악한 인물로 비치는 게 다반사지만, 영화에선 전혀 현실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택배기사' 강동원은 너무 착하고 친절하다. 가식적으로 비칠 만큼 외모도 목소리도 그저 멋지다. 배우가 주인공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공유하지 못하면 '감정 과잉'으로 일그러져 보일 뿐이다. 아무리 스타성과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라도 작품과 궁합이 안맞는다면 '미스 캐스팅'이다.
eel@tf.co.kr[연예팀 │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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