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3. 08:00ㆍ이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임세준 기자
[더팩트 | 오경희 기자] 반기문이 가니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주목받고 있다. 여권 유력 대권 주자였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정치권의 시선은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에게로 향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더욱 공고해진 '문재인 대세론'에 맞선 제3지대론의 중심 축에 김종인 전 대표가 서 있기 때문이다.
김 전 대표는 반 전 총장이 대권을 포기한 날, 바로 서울 시내 모처에서 배석자 없이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과 만찬회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정치권에선 반 전 총장의 불출마에 따른 대선구도 재편 문제와 제3지대론 등에 대한 대화가 이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정치권에선 반 전 총장을 중심으로 한 '빅텐트론'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부상했다. 여권과 야권 등 기존 원내 정당을 이탈한 인사들을 합당 등을 통한 화학적 결합을 하지 않고 '거대한 텐트' 속에서 단일후보를 선출한 뒤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전술이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이 중도 사퇴하면서 김 전 대표가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 인사에서 지난해 민주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하며 변신을 꾀한 김 전 대표가 중도·보수층을 아우르는 대표주자로서 제3지대의 새로운 축을 자임하면서 탈당을 결행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아 여당의 핵심 공약을 추진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에 대해 쓴소리를 해왔다.
김종인 전 대표는 지난해 1월 초 민주당에 입당하며 약 7개월간 비대위를 이끌었다./임영무 기자이후 지난해 1월 초 민주당에 입당하며 여당과 거리를 뒀다. 당시 민주당은 지도부 혁신 문제를 놓고 '문재인-안철수 갈등' 이후 내홍을 겪던 시기였다. 안철수 전 대표는 탈당 후 제3당 창당에 나섰고 문재인 전 대표는 김 전 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며 수습에 나섰다. 다소 파격적인 인사였다.
우려섞인 당 안팍의 시각에도 김종인(77, 비례, 5선) 전 대표는 '차르(러시아 전제군주)' '갓종인'으로 불리며 당내 기강을 세우고,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총선 이전 야권 통합 이슈를 선제적으로 던지며 신생 국민의당을 흔들었다. '노익장 리더십'으로 당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부 독선적인 행보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 전 대표는 지난해 4·13 총선을 두 달여 앞둔 2월 자신을 비례대표 2번으로 공천한 것과 관련해 당내에서 '셀프공천' '노욕'이라는 비판이 나온 것을 두고 사퇴까지 검토하며 칩거했다. 결국 문 전 대표가 집으로 찾아가 고개를 숙여야 했다.
새 지도부를 구성하는 지난해 8·27 전당대회 이후 김 전 대표는 약 7개월여 임기를 마치고 평의원으로 돌아갔지만, 김 전 대표는 이미 앞서 '킹메이커'를 자처하며 '대선 플랫폼론'을 제시했다. 퇴임을 앞두고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민주당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와 새누리당 소속 남경필 경기지사 등 여야 잠룡들을 만났다. 이를 두고 평생의 과업으로 삼은 경제 민주화를 실현할 대선 후보군을 물색한 과정이라는 시각이 제기됐다.
김 전 대표는 '킹 메이커'를 자임했으나 '추다르크' 추미대 당 대표 등 강경파가 당내 주도권을 잡으면서 중도를 표방해온 '김종인 역할론'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일각에선 그가 여의치 않으면 '제3지대'에서 대선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다음 날인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김종인 전 대표와 정담을 나누고 있다./국회=오경희 기자6개월여 후, 그때의 관측은 적중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대선 시계'가 빨라지고, 올 1월 12일 반기문 전 총장이 귀국하자 김 전 대표의 역할론은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친문(친문재인) 패권'을 거세게 비판해온 김 전 대표가 최근 신흥 강자로 떠오른 야권 대권 주자 안희정 충남지사를 패권정치의 '해결사'로 내세울 수 있다는 게 정치권 일각의 시각이다.
때문에 김 전 대표의 탈당 후 제3지대론 구축 시나리오가 최근 부상한 것이다. 김 전 대표는 오는 15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뮌헨 안보회의 참석을 위해 독일을 방문하는데, 정치권에선 그가 귀국 전 탈당 및 대선 출마 등에 대한 입장 발표를 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김 전 대표가 쉽게 탈당하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반기문 거품이 빠지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형성되는 데 힘을 얻기 힘들고, 이르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2월 말에 결정돼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 경우 김 전 대표가 활동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만약, 김 전 대표가 민주당에 잔류하게 되면 안희정 충남지사와 손을 잡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실제로 김 전 대표는 최근 안희정 지사와 만나 "여아를 뛰어넘어 50대 후보들이 돌풍을 일으켜 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차르' 김종인은 이번엔 어떤 '묘수'를 둘까.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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